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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도덕률, 스스로 도덕적인 인간 가둬

도덕적 관점에 대해서 니체는 선악의 이분법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사람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부정하면서 그것은 하나의 해석 방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특정한 방식으로 도덕의 가치를 해석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특정한 정신적 수준을 말해준다고 비판한다. 그는 기존의 도덕적 절대주의, 이성주의 윤리학, 자연성에 대한 금욕주의, 도덕적 문제 제기 방식의 문제점 등을 언급하면서 비도덕주의가 도덕적 자연주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자기 극복을 추구하는 의지(쇼펜하우어는 이것을 '욕망'이라고 했다)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상승적인 삶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칼 융에 따르면, 도덕성은 결코 밖에서 타인이 심은 것이 아니라, 인간은 애초부터 그 자신 내면에 '도덕법칙' 자체가 아닌 '도덕성의 정수(精髓)'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천성(天性)에 따라 살라는 것보다 더 도덕적인 관점은 없다고 주장한다.     니체가 도덕이란 관점에 대해 칸트를 비난한 것은, 결국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인데, 도덕법칙을 만들어서 인간을 틀 속에 가두려 했다는 점이다. 즉, 칸트가 주장한 보편적 도덕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일제 강점기에,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이 특정 일본인을 '민족의 원수'라는 이름으로 암살한 사건은 과연 도덕적인지를 묻고 있다. 즉, 도덕이란 상대적이지, 보편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자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의 상승을 이끄는 에너지이며, 이런 상승 프로세스로부터 생기는 자연스러운 이기심과 욕심을 비도덕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해석일 뿐, 결국 삶의 방향은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가 보는 이런 프로세스의 좋은 점은 힘의 느낌이 드는 힘에의 의지, 그 힘 자체를 인간 내부로부터 증대시키는 긍정적 에너지이고, 나쁜 점은 인간의 나약함에서 유래하는 것들. 가령, 종교에 빠진다든지, 건강을 해치는 유혹에 빠지는 행위 등이라고 한다. 이런 나약한 행위들은 인간을 절망 속으로 빠지게 하고, 종교에 종속되게 한다고 한다.     니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힘이 증가하는 느낌과 그것을 방해하는 내부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가령, 칸트의 '도덕법칙'에 따랐으나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점은 칸트도 인정한 부분이다. 칸트는 덕에 의존해서 선을 베풀었으나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최고선이 아니고 자신이 추구하는 도덕법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니체는 내면의 힘을 키우고 자연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개인이든 국가 등 강해지므로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노자의 거피취차(去彼取此) 사상과 거의 똑같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멀리에 있는 실체도 없는 이상을 좇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라는 것이다. 개성과 자율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과도 같다.     니체는 힘찬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건전하고 건강한 '이기심'을 복(福)된 것이라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주장한다. 여기서 그 이기심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결정하는 수단은 삶의 방향이 상승선으로 향하느냐, 하강선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삶이 자기 지배력이 부재(不在)하고, 병리적 상태이며, 수동성과 복종으로 경멸할 만하고, 자유롭지 못한 자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자, 이러한 사람들은 '노예도덕'을 지닌 사람들로서 그들의 시선은 강한 자의 덕(德)에 증오를 품는다고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니체는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지닌 의미를 터득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위버멘쉬(초인)'이요, 위버멘쉬는 이 대지의 뜻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바란다"라고 세상 사람들을 설득했다. 일반적으로 니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허무주의자 내지는 실성한 철학자로 잘못 알고 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도덕률 도덕 도덕법칙 자체 도덕적 관점 도덕적 가치

2025-04-14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관념·진리의 불변 vs 경험·변화 중시

'서양철학'은 사유(思惟)의 구조물이고, 관념과 진리의 불변을 주장한다면 '동양철학'은 경험과 현상 그리고 변화를 중시한다. 동양철학은 경험에서 출발하므로 논리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서양철학은 사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관념론(觀念論)'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서양에는 신(神)을 중시하는 관념과 '신'은 늘 불생 불멸(不生不滅)한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근대 이전까지 주장했고, 동양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인간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경험과 태극(太極)이라는 음양(陰陽)의 조화로 변화를 추구했다. 즉, 공자와 맹자의 유교(儒敎)는 인간에게 있는 도덕적 자각 능력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이고, 노자의 도교(道敎)는 '현실 세계'를 그대로 '천상의 세계'로 연장하는 구조를 보인다. 그러므로 공자와 노자는 '경험'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변한다고 주장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인 '서양철학사'에서 만일 기억을 지식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면, 과거는 지금 정신에 그대로 나타나야 하므로 어떤 점에서 여전히 '과거의 그'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과거의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이나 기억이 사유에 떠오르는 것일 수밖에 없음을 들어서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그 존재가 남긴 사상이나 말은 변화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셀은 대신 '실체의 불멸성'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일자(一者)'의 영원성으로 보고 있다.   '모더니즘(modernism)'은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을 비판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넓은 의미와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는 현대풍을 추구하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 있다. 또한, 이성적 사유와 본질 및 '실체 관'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상 경향으로 20세기 서구 문학.예술상의 한 경향이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면서 본질과 본성을 부정했다. 가령, '모더니즘'으로는 현상학의 본질이나 실존주의의 실존 등을 중시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서 설명하고 있는 본질(뿌리를 의미)보다는 개별 사물의 특성(줄기를 의미)을 강조하고, 리좀(Rhyzome, 줄기가 뿌리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어 두 사물의 구분이 사실상 모호해진 상태) 구조처럼 뿌리에서 뻗어 오른 나무보다는 상호 연계(네트워크)를 더 중시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나무는 뿌리라는 본질이 있지만, 리좀은 뿌리와 줄기가 얽혀있어서 본질이 없는 상태이다. 즉, '모더니즘'이 공자의 인(仁)의 본질 사상과 유사하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노자의 본질이 없는 유무상생(有無相生) 사상과 유사하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변화 경험 본질 사상 변화 중시 사상 경향

2025-04-07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도<道>는 신으로부터의 독립 선언

도(道)가 출현했다는 것은 신(神)으로부터 독립선언이다. 철학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 자체에 있다"라고 했다. 즉, 인간의 존재 이유를 신의 명령이 아닌 인간 자체로 해석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인(仁)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므로 도(道)를 인간의 '내면성'으로부터 구했다. 그러나 노자는 '도'의 근거를 '자연'에서 찾았다. 즉,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드는 것이 노자의 꿈이었다. 공자와 노자는 둘 다 천명(天命)보다는 도(道)를 주장했다. 노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주장했다. 유(有)는 눈에 보이는 영역이고, 무(無)는 시작점을 알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즉, 언제나 무(無)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有)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나타내려 한다. 유(有)와 무(無)의 긴장과 공존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긍정하지 않았다.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은 유와 무 사이의 경계에 서는 것으로, 만약 불안을 회피하고자 분명한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그 세계에 갇히게 된다. 모호함과 두려움이 있는 경계에 서서 양쪽을 모두 품을 때, 그것을 '통찰(洞察)'이라고 한다. 가령, 명(明)이란 한자는 해(日)와 달(月)을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고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즉, 서로가 상대성을 지니기에 서로 존재하는 것이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의 '다언삭궁(多言數窮) 불여수중(不如守中)'이란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니 가운데 지킴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광이불요(光而不曜)'는 빛나되 눈부시지 않다는 것이고,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들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즉, 옥처럼 고귀해지려고 하지 말고, 돌처럼 소박하라는 의미다. 그래야 적을 만들지 않고, 세상을 품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세상을 얻는 지혜의 '군주론'이다.   노자는 지인자지자지자명(知人者智自知者明)이라 했다. 이 말은 "남을 아는 사람은 슬기롭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밝다고 할 것"이라는 뜻이다. 즉,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롭다고 할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이여야 명철하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의 현인 탈레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가 생각난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좋아했던 말이다. 공자는 '내가'보다 '우리가', '개별성'보다 '집단성'을 더 강조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인(仁)으로 보고, 예(禮)로써 보편화하려 했으며, 집단의 '동일성'(사회의 규칙이나 규범을 준수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을 배척했다. 그러나 노자는 바람직하기는 하나 모두 똑같이 수행하는 틀에 박힌 사회보다는 각자가 바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더 강하다고 주장했다. 즉, 공자의 사상이 개인이 바라는 것을 버리고, 집단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라면, 노자는 그 반대의 개념을 주장했다.     노자의 사상은 '개별화'와 '자율화'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보는 것 같다. 노자의 사상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계를 중시하는 도(道)이며, 그 도는 텅 비어 있다고 했다. 즉,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도충이용지(道沖而用之) 혹불영(或不盈) 연혜(淵兮) 사만물지종(似萬物之宗)은 도덕경에 있는 말로, 도(道)는 텅 비어 있으나, 그 작용(作用)함에 있어서는 괴이(怪異)하게도 넘치지 않는다. 깊고도 깊도다! 마치 만물(萬物)의 근원(根源)인 것 같구나. 즉, '도'라고 하는 것은 마치 텅 비어 있는 것과 같지만, 아무리 채우려고 하여도 채워지지 않을 만큼 깊고도 넓으니, 이것이야말로 만물이 나오게 된 근원이며 절대세계(絶對世界)라는 것이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독립 선언 독립 선언 포스트모더니즘 사상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2025-03-31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우주 만물 질서의 태극 세계관 담아

속세의 세상은 음양의 물결치는 모양으로 섭리(攝理)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마음을 닦아 양심을 얻으면, 인간도 신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태극기가 얼마나 멋진 국기인지 자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자. 동양철학이 모두 들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사단칠정'보다는 태극론(太極論)을 더 중시한다. 우주 만물은 음양의 조화로 질서를 이루고, 인간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본질적인 도덕으로 여기고, 선한 양심을 유지하면 우주의 생성과 운행의 원리를 따라서 우주 만물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상이다.     우리 태극기(太極旗)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음양과 4괘는 우주 만물의 순환을 의미한다.     태극 문양은 음양을 의미하고, 4괘는 건곤감리(乾坤坎離)로 하늘(건), 땅(곤), 물(감) 불(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늘과 불은 양기요, 땅과 물은 음기다. 이 또한 음양의 조화다. 지구도 음양의 조화로 운행한다. 가령, 춘하추동(春夏秋冬)도 양기와 음기의 음양으로 순환한다.     즉, 춘(春)은 목(木)이요, 하(夏)는 화(火)요, 추(秋)는 금(金)이요, 동(冬)은 수(水)다. 즉, 봄과 여름은 양기요, 가을과 겨울은 음기다. 이것을 요일로 나타내면, 화요일은 양기, 수요일은 음기, 목요일은 양기, 금요일은 음기다. 모두 음양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음양의 조화다.     우리가 재미있게 표현하는 '불타는 금요일'은 맞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음기의 금요일이니 활발히 활동하면서 우리의 몸을 깨운다. '오행(五行)'은 화.수.목.금.토의 움직임으로 우주와 인간 생활의 모든 현상과 생성.소멸을 의미하며 '오방색'이란 화(붉은색), 수(흑색), 목(청색), 금(하얀색), 토(황토색) 여기서 혼란스러운 것은 태극 문양에서 붉은색은 양기, 청색은 음기라고 했으나 아래 〈표〉에서 음양의 조화를 정리한 표에서는 청색이 양기로 되어 있다. 태극 문양에서는 음양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색의 의미가 없다.     동양철학에서는 태극(太極)이 만물의 신이라고 했고, 속세의 세상은 음양의 물결치는 모양으로 섭리(攝理)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마음을 닦아 양심을 얻으면, 인간도 신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태극기가 얼마나 멋진 국기인지 자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자. 동양철학이 모두 들어 있다. 인간 도덕의 절대적 선(善)인 사단(四端)이 인간의 양심을 지탱한다고 맹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조선 유학 철학의 중심이었다. 이황은 사단은 절대적으로 선(善)한 이(理)이므로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하는 칠정(七情)과는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이이는 이(理)는 관념적이니, 실제 운동하는 기(氣)에서 칠정이 발생하고, 그것 안에 사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세계관 우주 우주 만물 태극 세계관 우리 태극기

2025-03-24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은 일치

성리학(性理學)에서는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心性)이 일치한다고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명제 아래,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으로 이기론(理氣論)을 발달시켰고, 다시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 심성의 발생 과정과 그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유교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송나라 때 주희의 성리학(性理學) 사상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리학은 조선의 통치이념이 되면서 선비들의 출세에 발판이 되었다. 주희의 성리학은 하늘과 인간 심성의 합일을 통하여 인간과 우주는 하나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용에서 말하는 하늘의 명령인 성(性)을 따르는 것은 도(道)요, 이것을 되게끔 하는 것이 교(敎)라 한 것과 맥락이 같다.     조선시대 이황은 이(理)와 기(氣)는 서로 구분된다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했으나 이이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했다. 이 사상은 현재까지도 한국 유교철학에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퇴계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분리시켰고, 율곡은 사단은 칠정의 선한 것만 추렸으니, 칠정인 기(氣)가 이(理)를 포함하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했다. 퇴계는 '사단'은 하늘의 이치이자 본질이므로 이(理)로 보았고, '칠정'은 인간의 생각과 헤아림으로 인해 변화가 생기므로 기(氣)로 보았다. 즉, 이기이원론을 주장했다.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나오는 말로 실천도덕의 근거로 삼았다.     그 내용은 측은지심(惻隱之心,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을 말한다.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과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기쁨(희, 喜), 노여움(노, 怒), 슬픔(애, 哀), 두려움(구, 懼), 사랑(애, 愛), 미움(오, 惡), 욕망(욕, 欲)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유교에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희노우구애증욕(喜怒憂懼愛憎慾)이라 한다. 어리석음과 두려움, 증오로 표현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원래 사단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목이 관련된 윤리적 범주에, 칠정은 인간의 감정을 총칭하는 인성론의 범주에 각각 속하여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던 말이었다. 공자는 인(仁).예(禮)를 중히 여겼고, 맹자는 인(仁).의(義)를 중히 여겼다. 맹자는 인간은 선한 마음을 타고난다고 했으나, 순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仁).예(禮)로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성리학(性理學)에서는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心性)이 일치한다고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명제 아래,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으로 이기론(理氣論)을 발달시켰고, 다시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 심성의 발생 과정과 그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퇴계는 영남학파가 되고, 율곡은 기호학파가 된다. 동서로 나누어지게 된다. 결국, 서인인 기호학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또 갈린다. 사단칠정론의 논쟁은 퇴계(1502~1571)와 기대승(1527~1572)의 사칠이기논쟁(四七理氣論爭)으로 시작되어, 조선 유학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퇴계와 기대승의 8년 논쟁(1559~1566) 끝에 기대승은 퇴계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 후로 율곡(1536~1584)도 논쟁에 가세한다. 일본에서는 율곡보다 퇴계를 더 따른다. 퇴계의 사상이 성리학의 철학을 더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심성 하늘 인간 심성 한국 유교철학 철학적 근거

2025-03-17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공자 보편성, 노자 개방성에 가치 둬

공자는 자아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보편성에 가치를 두었다. 사람은 타고난 따뜻한 마음인 인(仁)을 중시하면서 효(孝)와 예(禮)로써 승화시켜야 국가의 질서가 확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설명한다. 즉, 자기를 극복해서 예로 승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에 반기를 든다.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나 이념의 기준을 만들어서 인간을 속박한다는 것이다. 즉, 억지로 만들어진 개념적 구조이자, 한쪽이 배제되는 억압의 상태이며, 자발성과 자율성을 짓밟는 사상이라고 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했다. 도가 말해질 수 있다면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자기를 늘 경계에 서게 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방성과 자율성을 감당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학일익(爲學日益)' 즉, 배운다는 것은 날마다 무엇을 보태는 일이고, '위도일손(爲道日損)' 즉,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날마다 조금씩 덜어낸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의 가치 체계를 줄이고 약화해서 무한한 개방성 속에 놔두라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라 했다. 즉,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지 똑같이 하려고 하지 않고, 소인은 똑같이 하려고 하지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군자는 마음이 화평하나 소견이 각기 달라서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소인은 좋아(기호, 嗜好)하는 바가 같다. 그러므로 각자가 이익을 다투기 때문에 화합하지 못한다.   공자는 인과 예를, 맹자는 인과 의(義)를, 순자는 예를 강조했다. 유학은 원래 현실적인 학문으로 윤리.도덕.정치.교육 등 실제적인 생활면에 응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중심적 특성이 도가나 불교로부터 세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설(敎說)'로 비판받게 된다. 즉, 철학 이념이 유교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주희는 당대의 여러 학자의 사상을 집대성해서 철학적으로 유교를 발전시키는데 이것이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인간의 심성, 사회에서 인간의 자세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한다. 이것은 당(唐)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희에 따르면, 이는 만물의 생성을 관장하는 근본인(根本因)으로 객관화시켰다. 즉, 이는 인간에게는 본연의 성(性)으로서 갖춰져 있으나, 인간은 기를 통하여 구체적인 실재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개인들이 지닌 혼탁한 기질(氣)을 수양을 통하여 극복해야만 본연의 성(性)인 이(理)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즉, 수양을 통해서 혼탁한 기(氣)를 없애야 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 이(理)는 불심(佛心)이고, 기(氣)는 마음의 욕심(慾心)으로 비쳐서 언뜻 보면 불교와 같은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세간의 비판에, 불교의 약점은 인간의 주체적.내면적 세계를 강조하느라 인간의 인륜적 사회관계와 국가현실의 문제에 대처하고 경륜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한 주희는 불교를 평가하면서, 경(敬)에 치중해서 '안'을 보게 하는 노력은 있으나, 의(義)로써 '밖'을 반듯하게 하는 실질은 없다고 했다. 즉, 안과 밖은 본시 뗄 수 없는 것인데 밖이 없으니 안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성리학(性理學)에서 이(理)란 우주 만물의 근원으로 선(善)한 것이고, 기(氣)란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이며 선(善)과 악(惡)이 혼재한다고 했다. 이황은 '사단(四端)'이란 이(理)로 본질이고, '칠정(七情)'은 기(氣)로 감정이므로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사단'은 맹자의 주장으로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고,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보편성 개방성 공자 보편성 가치 체계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2025-03-10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규범 vs 자발성, 세상 보는 관점차

도가(道家)에 대해서 살펴보자. 춘추시대에 태동한 제자백가 중의 하나로 노자가 창시했다고는 하나 노자의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유가(儒家)와 도가는 차이가 있다. 유가는 예의범절과 사회규범을 확립함으로써 혼탁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지만, 도가는 유가처럼 선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기준이 있으면 차별을 하게 되고, 나아가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세상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자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의 규범을 타파하고, 백성이 자발성을 가지고 삶을 누려야 국가가 더 부강해진다고 했다.     도가에 따르면, 만물은 도(道)로 인해, 무에서 유로 다시 무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고, 도는 그 모든 생성과 변화의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도가 사상을 이데아와 같은 실체를 지니지 않는 일종의 현상학이라고 한다. 노자는 이 도를 무와 동일시했는데, 이는 유의 가능성을 내포하여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도라 했다. 그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자연으로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무위(無爲)사상이 나온다. 노자 사상을 오해하는 부분은 자연을 벗 삼으라고 해서, 숲속에 들어가 원시인처럼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이란,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인 도를 파악하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도를 도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유무(有無) 관계로 이루어진 도란 것은 항상 운동과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생긴 이유이다.     도가는 정치철학이다. 가령, '도덕경'이 오랫동안 제왕학의 교본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라는 것은 백성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지, 책을 읽고 만들어진 백성은 유위(有爲)라는 것이다. 즉, 폭군이 있다면 목숨 걸고 충언하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이라면, 도가에서는 인위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해야 하므로 일단, 폭군과 함께 행동하여 그를 길들인 후, 그로 하여금 스스로 폭정을 하지 못하도록 움직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도가와 유가는 서로 반목한다.     노자는 '무위'라는 것은 어떤 것을 이루려는 마음(욕망)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한다. 유가가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정치라면, 도가에서는 그런 철학이 없다. 노자는 천지(天地)가 인간을 딱히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도가의 성인(聖人)은 그러한 '자연'을 본받아 백성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성인은 심(心)을 초월했기 때문에 세계와 주변 상황을 자기 마음속에 있는 특정한 틀이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즉, 그대로의 세상을 직시하면서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응하면서 전략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도가는 권모술수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예로 노자는 '무위'를 통하여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즉, 백성에게 어떤 욕망이나 깨달음을 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어떤 방향성이 생기지 않고, 항상 그들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우민화 정책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석은 법가(法家)의 '한비자'에 영향을 미치고, 법가를 숭상한 진시황은 백성의 배움은 죄악을 낳고, 책과 선비들이 죄악을 부추긴다고 생각해서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끔찍한 사태를 낳고 만다. 이 점에서 도가는 고도의 정치철학이라 볼 수 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자발성 관점차 자발성 세상 노자 사상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2025-03-03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현명한 행동

중용(中庸)은 원래 예기(禮記)에 속해 있었으나 주희가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포함했다. 사서는 공자 사후에 생겼다. 그러나 삼경(시경, 서경, 주역)은 공자 생시에도 있었다. 중용의 뜻은 지나치게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현명한 행동의 도(道)를 말한다. 가령, 노자의 '유무상생',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경계'에 서라는 사상과 유사하다. 공자는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라고 했다. 노자는 정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최고의 정치는 백성이 누가 통치하는지도 모르는 태평성대, 그다음은 백성을 친하게 여기고 기리는 정치, 최악에 버금가는 정치는 백성을 두렵게 하는 공포정치, 최악은 백성이 경멸하는 정치라 했다.   중용에 보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즉,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행위를 교(敎)라 한다. 여기서 성이란 지하수처럼 무한히 흘러나오는 마음. 즉, 하늘마음(天心, 한마음)이다. 모든 개인은 정(情)을 가지고 있다. 즉, 양심이라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 쌓이면서 개인들은 그것을 '자아'로 착각하고 '자신'으로 여긴다.     여기서부터 개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계산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욕심'이 '양심'의 자리를 메우면서 악이 선을 대체하는 현상으로 바뀐다. 하늘은 분명히 성을 따르라고 했다. 이것은 옳은 선한 양심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고, 이 마음들은 모두 하늘의 성과 만나고, 결국 이 우주는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면 서로 다툴 일도 없다. 욕심이 들어찰 이유가 없다. 문제의 근원은 잘못된 자아의 인식이다.     불교에서는 참나만 있을 뿐 '자아'는 없다고 한다. 자아가 없으니 욕심낼 이유가 없다. 그러니 '방하착(放下著)' 하라는 것이다. 즉, 모든 욕심을 버리고,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을 해야 마음의 '평상심'을 유지해서 해탈하고 열반으로 든다는 것이다. 위광편조십방중(威光?照十方中), 월인천강일체동(月印千江一切同)이란 부처님의 위엄 있는 빛은 온 세상에 빠진 곳 없이 두루두루 비추나니, 이는 마치 달빛이 온갖 강물에 빛나는 광경과 완전히 똑같다는 뜻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 31년(1449년)에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으로, '월인석보'에 따르면 500여 수의 노래로 추정되나 오늘날은 상권만 전한다. '월인천강(月印千江)'만을 떼서 보면,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달 도장을 찍어 놓는다. 즉, 하늘마음과 사람 마음의 관계로서,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똑같은 달을 새기니 모든 사람에게 '한마음'을 만든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중용이나 불교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천도교 사상)' 사상이나 모두 마음의 '욕심'을 버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용에서는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라 했는데, 이 말은 하늘의 뜻인 '한마음'을 따라야 하고, 한마음은 곧 인간의 본심인 양심인 것이다.     중용의 사상은 하늘의 명(命, 성(性)을 의미함)과 사람의 정(情)이 합치하면, 그 넓은 하늘(우주)과 인간 마음이 연결되어서 인간이 곧 하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이 지옥이다. 욕심을 버리고 본심으로 사는 세상이 진정한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있는 천국이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한쪽 행동 공포정치 최악 천심 한마음 유무상생 한쪽

2025-02-24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욕망 없애고 무소유 되면 해탈

싯다르타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싯다르타가 태어날 때, 점괘는 인도를 통일시키는 위대한 왕이 되거나 위대한 종교인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 점괘를 본 왕은 싯다르타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젊은이가 되었을 때, 말을 타고 성안을 둘러보면서 처음으로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그리고 시체를 보고는 자신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시름에 빠졌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뒤로하고 출가(出家)를 결심한다. 그의 아들은 나후라였는데 홋날 붓다를 따라 머리를 깎고 수행에 정진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고, 아라한(깨우친 자)이 된다. 아비인 붓다가 물려준 유산은 보물도 다른 재물도 아닌 정신수양을 일깨운 것이었다. 붓다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인간 속세의 생로병사를 이겨내는 수단으로 깨달음을 얻도록 중생들을 교화시켰다. 붓다는 6년간의 고행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 흘러가고, 마음이 여여한 무심의 상태에서 우리는 늘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싯다르타는 인생은 결국 고난의 연속이므로 그 역경 속에서도, 명상을 통하여 무소유의 맑은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결국, 기독교는 사랑과 봉사를 베풀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불교는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온갖 욕망과 잡념을 없애고, 무소유로 되면 윤회하지 않고 해탈하고, 열반에 들어서는 것을 최선으로 본다. 이것은 불생(不生)을 의미한다. 즉, 진여(眞如)의 상태다. 진여는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님을 뜻한다.   불교는 공자의 유교나 노자의 도가와 비슷한 시기에 전파된 종교다. 불교는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마음속의 번뇌를 털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번뇌는 욕심과 그릇된 사랑으로부터 발생하니,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욕심이 없을 수가 없으니 수양으로 극복하길 교화한다. 불교에서는 인(因)과 연(緣)을 중시한다. '인'이 직접원인이라면 '연'은 간접원인이다. 가령, 사람이 늙고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인데, 부모가 직접원인이라면, 그 부모는 또 다른 이유로 서로 맺어졌으니 결국, 우주만물은 상호연결되어서 서로 의지하는 관계로 된다는 것이다. 즉, 유위(有爲)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만든 사물이나 존재물이기 때문에 모두 인연의 구속을 당한다. 신이 있어서 우주와 만물이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인연으로 생성되었다고 교화한다. 그러므로 인간 모두는 원래 부처이며, 누구나 부처로 돌아갈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서 중의 하나인 중용에서는 하느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과 만물의 마음이라고 주장하므로 우주 만물은 하나라고 교화한다. 단, 욕심을 버려야만 된다는 단서를 단다. 형식만 다르지,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하느님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성인들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신기할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들보다는 시기적으로 약간 뒤의 성인이나 도덕적으로 정직하게 살라는 교훈을 주었고, 그의 제자였던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犬儒學派)를 이루었는데 개처럼 욕심 없이 지금 순간을 즐기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행동으로 보였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재물이나 식량을 비축하려 하나 개나 돼지 같은 동물들은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면, 인간처럼 비축하지 않은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개들처럼 밖에서 잠을 잤고 걸식도 했다. 그러나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절제된 자유를 누렸다. 종교철학이든 일반철학 사상이든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무소유 욕망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아비인 붓다 우주 만물

2025-02-17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깨우침은 단박에 이루어진다

지난 회에 다뤘듯, 불교 교리에 계정혜(戒定慧)가 있다. 이것을 불교의 '삼학'이라고 한다. 삼학은 가장 기본적인 불교의 교리이며, 일체의 법문(法門)은 모두 삼학으로 귀결된다.   계(戒)는 심신에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정(定)은 계에 의해 몸과 마음이 조정되면, 다음에는 마음을 통일하는 정(定)이 생긴다. 혜(慧)는 도리를 명석하게 분별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불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깨우침의 지혜를 얻는 것이며, 혜는 가장 넒은 의미의 지혜다.     혜능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다. 즉, 깨우침은 단박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수스님은 수상정혜(隨相定慧)를 주장했다. 상을 쫓아서 선정으로 마음의 고요함을 얻은 후에 지혜를 점차 갈고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또 보조스님은 돈오점수(頓悟漸修)라 하여 단박에 깨우침을 얻고도 무명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계속해서 '선정(禪定.생각을 쉬는 것)'과 지혜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혜능과 신수의 중간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철스님은 돈오점수는 혜능의 가르침이 아니고 잘못된 해석이라고 했다. 결국, 돈오돈수 즉, 단박에 깨닫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수행은 오랜 시간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깨우침은 별것이 아니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깨우침을 얻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전부터 범인에겐 알 수 없는 수행 또는 남다른 불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암묵적 지식'이다.   오조스님은 일개 나무꾼이었던 혜능에게 육조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혜능스님(육조스님)은 설파하시길 선정과 지혜는 하나라 했다. 자성(自性)의 본체가 선정이요, 자성의 작용이 지혜라는 것이다. 자성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 즉, 모든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부처의 마음인데, 선정(禪定)이란 본체 속에 지혜의 작용이 있으니, 몸과 뇌는 하나이듯, 선정이 지혜요, 지혜가 곧 선정이란 것이다. 육조 스님이 말씀하시길,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 자성의 선정이고,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성의 지혜라 했다.     고려 중기 때,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돈오점수를 설파했다. 즉, 불도에 들어가는 문은 오직 돈오(頓悟.단박에 깨달음)와 점수(漸修.점차로 닦아나감)의 이문(二門)에 있음을 밝혔다. 점수의 방법론은 정혜(定慧)를 동시에 골고루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그의 저서인 '수심관(修心觀)'에서 체계화하였고, 이는 곧 한국불교의 선수행(禪修行) 지침이 되었다.     노자의 '도덕경' 제8장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표현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도덕경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고 또한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스스로 처한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항상 향하면서 머물 때도 낮은 곳에 처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물은 도(道)에 가깝다.     불교에선 모든 것은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가 있으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허상(虛像)이므로 공(空)의 세계로 들어가 여여한 마음을 갖는 것을 득도(得道)의 길이라고 한다. 니체는 불교와 다른 관점으로 모든 만물은 변화하므로 이 세상에 '절대자'와 '진실'은 없고, 단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이 세상이라는 특정한 세상에서 '힘에의 의지(위버멘쉬)'로써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 철학자 중에 무신론자가 많은데, 그들은 형이상학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실존철학에 무게 중심을 둔다. 그들에게는 신보다 존재하는 인간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니체도 그중 하나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단박 무명 불교 교리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저서인 수심관

2025-02-10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깨달음의 경지로 가는 '도<道>'의 길

불교에서 윤회를 벗어나서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우선 이해하여야 한다. '팔정도'는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涅槃.번뇌가 소멸한 상태 또는 완성된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하는 불교의 교리)'에 이르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여덟 가지 덕목을 말하는데, 계정혜(戒定慧)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을 삼학(三學)이라고 한다. 계학(戒學)이란 정어(正語), 정명(正命), 정업(正業) 즉, 바른 말, 바른 생활, 바른 일을 의미하며, 정학(定學)이란 정정(正定),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즉, 바른 집중, 바른 알아챔, 바른 노력을 뜻하고, 혜학(慧學)이란 정견(正見), 정사(正思)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를 가리킨다. 따라서 삼학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다.   중요한 석가모니 가르침에 '사성제'라고 있다. 이는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고(苦), 집(集), 멸(滅), 도(道)라는 사성제(四聖諦)를 제시하면서 세계는 고통(苦)이며, 고통의 원인(集)은 욕망이고, 고통을 소멸(滅)하기 위한 길(道)을 통해 열반(涅槃)에 이르러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사성제'를 해결하는 도(道)의 길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했다. 이 말은 도(道)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다. 도(道)를 통달한 자에게 도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그가 도를 통했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설령, 도를 통했어도 함부로 도란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도라는 자체가 이미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은 표현인데 범인들이 도를 운운한다는 자체가 틀린 것이다. 도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 신성한 세계에 토를 다는 것조차 어리석은 것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란 표현이 있다. 화엄경 법성게 가운데 나오는 말로, 먼지 한 톨 속에 우주가 다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만물의 모습이 '시방(十方.사방(四方), 사우(四隅), 상하(上下)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편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道)는 '깨달음'일까? 조계종의 현응스님은 "잘 이해하는 깨달음"이라고 표현한다. 즉, '반야지(般若智)'라는 것이다. 반야와 지는 서로 같은 뜻인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반야지라 한다. 반야지는 '미망(迷妄.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과 고통의 세계를 극복하고, 평화와 안락한 극락세계로 돌아오는 지혜를 의미한다. '깨달음'이란 공(空)과 연기(緣起)를 이해하는 것이라 한다. 스님에 따르면 '깨달음'은 지혜와 이해의 영역이며, '선정수행(禪定修行.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모으기 위해서 온갖 잡념을 버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통해 이르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를 뜻함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에 선정수행을 하는 분들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이유는 불교의 '삼학'은 '계정혜'인데 마치 정(定)을 무시하는 듯한 말이기에 비판을 받은 것 같다. 스님은 '깨달음'을 잘 얻기 위해서는 설법과 질의응답, 토론, 경전과 어록 열람, 불교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독서 등이 현대적인 수행법이라 했다.   조계종의 '조계선풍'은 육조 혜능스님이 정립했는데, 그 정신의 요지는 돈오(頓悟) 즉, 단박에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부처님의 당시 가르침에서부터 2600년간 형성된 불교의 가르침을 두루 살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유용한 가르침은 '대승불교'와 '조계선풍'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이며 본질을 꿰뚫는 선적인 안목은 오늘날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화들을 단숨에 재정리하여 새롭게 통합시키는 안목을 낳는다고 한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깨달음 경지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오늘날 현대사회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2025-02-03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자기 안에 부처 있음을 깨달아야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眞如)의 상태란 절대의 상태, 공(空)의 상태, 무심, 평정심, 하심을 말한다. 인간은 본질과 현상 속에서 산다. 진여의 상태가 본질(바탕 마음)이라면, 현상은 상대가 있는 상태 즉, 생멸하는 세계, '색(色.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적인 형체가 있는 모든 존재)'의 상태를 말한다.   본질과 현상을 잡으려면 '현재'를 잡으라고 한다. 현재를 어떻게 잡나? 모든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거늘 현재가 있나?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현재를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현재가 생긴다. 매 순간이 현재다. 순간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슨 재주로 잡나? 본질이 진여의 상태에서 보인다면, 그곳은 공의 상태, 무심의 상태. 즉, 무의식의 세계일 수 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잡념이 많아서 무심의 상태가 되기 어렵다.   그런 상태에서 평정심(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편안한 감정을 유지하는 마음)을 갖기란 어렵다. 한 생각이 없이 여여(如如)한 상태. 이런 상태가 현상이 배제된 상태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시간은 강물과 같다고 했다. 즉, 한번 발을 담근 물은 다시 오지 않듯이 시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지금, 바로 여기, 우리가 사람을 만나든지 연구하든지 같은 시간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에 머물러야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자기 안에 부처가 있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진여의 세계에 머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산속에서 고행을 통해야만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50년 동안 산속에서 불경을 외워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반면에 깨달은 사람 중에는 단박에 깨닫는 사람도 있다. 육조 혜능스님이 그랬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들의 본질 즉, 본래 마음은 예전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있었다. 늘 청정한 마음으로 공의 상태로 존재했다.   본래 마음속에서는 모두가 하나다. 우주 만물이 하나라는 얘기다. 나와 식물과 집에 있는 반려견도, 그리고 우리가 만난 적도 없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나다. 즉,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인데 욕심과 탐욕이 있을 필요도 없다. 이런 청청한 마음속에서 몰두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거의 무의식의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주 만물이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 모든 진여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받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생로병사하지만, 무심(無心)의 마음은 그 자리에서 영원하다. 현재의 육체는 내가 아니고, 나의 마음은 무심한 상태다. 다시 말해 나는 진여의 세상에 있고, 부처도 거기에 있다.     사람의 죽음은 이승에서의 인연으로 인한 한 개인의 생로병사이지 '참나'가 아니다. 이것을 깨우쳐야 윤회하지 않고, 진여의 세계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투사들에게 거사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水丈夫兒.중국 송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사의 선시)'였다. 즉, 낭떠러지에서 붙잡은 손을 내려놓는 것이 대장부라는 것이다.   마음의 집착과 욕심, 탐욕을 버리면 텅 빈 고요한 마음을 얻는다. 부처가 되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죽으나 참마음은 원래 있던 그곳에 계속 존재하니 죽음을 두려워 말라는 뜻이다. 즉,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으로부터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라는 것이다.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공(空)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내가 바로 붓다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부처 생로병사 상태 무심 본래 마음속 부처 있음

2025-01-27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원래 있는 것을 찾는 게 깨달음

깨우침을 얻으려면 계정혜(戒定慧)와 팔정도(八正道)를 우선 공부하고,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깨달으면 탐진치(貪瞋痴, 욕심, 분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열반에 든다고 불교에서 가르친다. 결국,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은 인간의 수행과 지혜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니 인간의 육체가 없이는 깨달음의 수단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깨달으면 자아(自我)란 존재는 원래 없는 것이다. 나란 존재는 육체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늘 여(如如)히 그 자리에 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분들은 깨달음이란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육체가 있는 것이고, 욕망도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의지도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깨달음' 공부에 매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지란 욕망 내지 욕심이다. 이것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목표가 생기고,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니체도 비슷한 사상으로 욕망의 순기능을 주장한다. 훨씬 전의 스피노자도 이성을 가진 욕망을 주장했다. 이처럼 욕망이 있어야 생기가 넘치고, 삶의 원천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욕망을 도덕주의에서는 숨기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억압이 돼 꿈에서 왜곡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그것을 풀지 않으면 히스테리나 신경증, 심하면 조현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깨우침의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실제로 깨우친 분들의 뇌파를 보면 세타파가 많다고 한다. 수면 중의 뇌파가 델타파인데, 이것 다음으로 조용한 뇌파가 세타파인 것이다. 거의 몰입의 경지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이 풀리고, 도파민과 같은 행복의 신경전달물질이 솟아난다.   만약, 그것이 화두였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우침의 경지를 맛본 것일 테고, 과학자였다면 노벨상을 받을만한 연구의 결과를 맛볼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너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종교로만 이해하기보다는 몰입을 통하여 또 다른 정신세계와 만난다는 수단으로 수행을 하면 좋겠다.   몰입을 통해 뭔가의 깨달음을 얻으면 분명히 뉴런의 접속과 연결이 바뀌고 새로운 시냅스들이 생성될 것이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이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될 것이다. 대뇌피질이 변하여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다. 이것이 깨우침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들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도인(道人)의 향기가 날 것이다. 인간의 몸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니 특유의 화학적 냄새를 풍길 것이다. 이런 것을 찾아서 후각을 활성화하는 물질을 개발한다면, 누구나 깊은 연구에 몰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세계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실례로 미국 병원의 한 간호사는 파킨슨병 환자의 환자복에서 특유의 냄새를 식별했고, 자기의 남편에게도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파킨슨병임을 확신했고, 진료의 결과 정말 그녀의 남편이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 의료진은 냄새로 병을 인지한 사실에 경악했다고 한다. 가령, 반려견들도 자신이 암에 걸리면 냄새로 알고, 우울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앞으로 후각은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될 것이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    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깨달음 신경세포 파킨슨병 환자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화학적 냄새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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